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백두산 관광기

아기도령 2009. 8. 6. 14:37

지난 7월 20일 15시15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중국 대련공항에 도착하는

보잉 737기 항공편으로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 신의주가 보이는 중국 단동과

민족의 한이 서린 압록강의 끈어진 철교를 관광하고

7월 24일 17시35분 중국 대련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은 하나관광에서 모집된 41명과 함께하였으며,

소요 경비는 1인당 399000원과 현지에서 기사, 가이드팁을 포함하여 1인당 5만원

그리고 하나관광의 계획된 식당이 아니고 특별식을 위한 추가비용,

또, 압록강의 끈어진 철교 입장료와 압록강 관광유람선 승선비 등

약 5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여 1인당 50만원이 소요되었지만

뜻있고 보람찬 여행의 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압록강의 사진은 소중하고 분량도 많아 따로 올리겠습니다

다음카레에서 한번에 올릴수 있는 사진은 20매로 한정되고

나누어 올리면 생동감이 떨어지기에

좀더 많은 사진을 올리지 못함을 양해해 주세요.

 

동영상도 올리니 함께 감상해 보세요.

 

 

 (사진1) 공영 자전거

 

시민에게 대여되는 화물운반용 자전거인데 자전거 관리번호가 눈길을 끌었고,

제동장치인 브레이크를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오토바이 같이 발로 밞아야 하고

90도 엥글로 타이어를 잡아주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 보입니다.

 

 

(사진2) 전기와 겸용인 자전거

 

중궁도 태국이나 베트남같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인구가 많고,

차량의 매연으로 부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차량증가를 억제시킬 목적으로  

편리하게 밧데리를 이용하여 탈수있는 오토바이를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오토바이는 충전한 밧대리를 동력으로 이용할수 있으며,

자전거와 같이 페달을 이용하여 이동할수도 있는 자전거겸용 오토바이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오토바이의 페달은 자전거로 탈때 사용되는 페달입니다.

 

 

(사진3, 4)  중국의 단동에서 북한의 신의주 신의주를 바라보며.

 

 

민족의 강이라 일커러지는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이루고 있고

민족의 한이 많이 남아있는 강이며, 보이는 강이 압록강이고 강건너가 신의주 만포마을입니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은 특이하게도 강물 전체가 경계선이라 합니다.

즉, 중국에서 배를 타고 북한쪽에 갔을 때 북한 쪽 땅에 발을 내리면 국경침범이고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국경침범이 아니랍니다. 중국쪽도 마찬기지고,

압록강에서 고기를 잡는 것은 북한에서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진5) 고구려 유적지

 

중국땅 집안시(集安市)는 옛 고구려의 2번째 수도였으며,

집안시는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으로서 길림성 동남쪽에 위치한다.

AD 3년경 고구려 제2대왕인 유리왕이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였는데

427년까지 424년간 수도로서 가장 찬란했던 번성기를 누렸던 만큼

광개토태왕비, 태왕능, 장군총 등 고구려의 많은 유산이 산재하고 있습니다.

 

 

(사진6)  광개토태왕 비

 

서기 414년 광개토대왕(정식명칭은 광개토태왕 임)의 아들 장수왕이

광개토태왕 재위 22년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한반도 최대의 비석이 광개토태왕비이다.

4~5세기 동아시아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옛 고구려의 상징물이다.

광개토태왕의 릉은 유실이 심하여 통제하므로 관람이 불가하다.

 

 

 (사진7) 장수왕 릉 (장군총)

 

길림성 용산에 있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돌무지 무덤으로서

고구려 20대왕인 장군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웅장한 형태의 능으로 고구려의 비약을 상징하며,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높이 12.4m, 길이 31.6m의 계단식 사각형 피라미드 형태(들여쌓기)와 그랭이 공법으로 축조되었다.

 

고구려 시대에는 이렇듯 단군시대 이후 가장 번창하는 시대였으나

이조시대인 1638년 인조 임금은 청나라 태종의 침범을 막아내지 못하고

1639년 남한산성에서 항복을 하였으며,

60만명에 달하는 국민을 뇌물로 바치는 단군이레 최대의 굴욕시대도 있었습니다.

화냥년이란 말이 유례되어진 환향녀(還鄕女)는 돌아온 백성들이지만 돌아오지 못한 백성들은

청나라에서 조선족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고 370년이 흐른 지금 중국 남부 광성에는 백족이 있으며,

그 백족은 한국의 풍습과 똑같이 고추장, 된장 등의 음식과 우리의 전통문화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고구려 유적지에 남아있는 릉들은 도굴로 홰손이 심하며, 장군왕릉도 도굴된체 보존되어지고 있다.

왕과 본처, 후처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굴 안에는 고구려 벽화가 색상이 변색된채 선명이 남아있으며,

장군왕릉은 광개토태왕의 릉과 유사성이 많으므로 장군왕릉을 본 것으로 만족하였다.

 

 

(사진8) 백두간(장백산) 안내소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횐머리산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이후 장백산(長白山, : 청바이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며,

중국 길림성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의 영토로,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합니다.

장백산 매표소를 신축공사하는 중이다.

장백산은 중국의 10대 명산에 속하나 이는 중국민들에게 동북공정을 알리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랍니다.

 

 

 (사진9, 10) 인력거

 

 

 

백두산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에 비디오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북파코스와 남파코스, 서파코스로 나누어져 등산코스가 있으며,

우리는 압록강을 이루는 제자하폭포를 지나는 서파코스를 택하여 관광하였고,

서파코스는 언덕을 따라 하늘로 이어지는 듯한 얕은 계단을 트래팅하듯 따라 올라가서

천지를 볼수 있는 코스로서

1200여개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주변에 흩어져 자라는 고산지역의 야생화와 백두산의 풍경을

한눈에 눈앞에서 마주하며, 올라가는 운치가 있습니다.

북파코스로 천지에 오르면 천지의 물을 손으로 만질수 있다고 합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를때 장애 및 노약자들도 함께 할수 있는 인력가마가 이체로웠습니다.

다음에는 북파코스로 가야지~~

 

 

(사진11) 금강대협곡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된 금강대협곡은 원시림 사이로 나있는 관광로를 따라 삼림욕을 즐길수 있다.

각종 여러가자의 형태를 띤 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12)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압록강 발원수

 

이곳이 압록강의 발원지이다.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은 모두 백두산에서 발원되며,

너무도 깨끗하여 흐르는 물을 식수로 이용하며, 냉장고에 넣었던 물보다 더 차다.

시원하고 맛있어서 많이 먹었으니 아마도 백두산 정기를 많이 받았을 것이고,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 받았으니 건강히 오래오래 살 수 있을것 같다.

 

 

 (사진13)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금강산의 절경

 

정상 가까이서 보이는 모든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며,

일찍이 그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장관의 연속이다.

백두산 상부에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그런데 꼬맹이가 무척이나 힘든가 보다.

 

 

 (사진14)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이제 약 200m만 오르면 저 위의 백두산의 정상에 있는 해발 2194m의 천지를 볼수 있을 것이다.

 

 

 (사진15, 16, 17) 정상의 중국과 북한의 경계석

 

 

 

백두산 풍경 중 최고로 뽑히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하여

천지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또한 백두산의 서쪽 코스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로 국경을 표시하는 5호 경계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한발 내딧으면 북한땅을 밟는 것이 됩니다.

이곳에 북한의 경비병은 없고 중국에만 소속을 알수 없는 통제원 1명만 비무장으로 근무한다.

 

백두산 천지는 10번을 방문해야 2번(20%)을 볼수가 있다고 하며,

우리 일행 41명 중에서도 5명만이 천지를 보았답니다.

사진에서 볼수 있듯이 200m를 남겨놓았을 때는 맒은 날씨가 오르고 나니까 안개비로 변했다.

 

저는 사진을 찍느라 조금 늧게 도착하여 약 2분정도 밖에 못보았으나

본것 만으로 만족을 하였고 감시원 몰래 약 2분간 동영상을 찍고 나니까 구름이 몰려와

그만 사진을 못찍었으며, 몰래 찍은 동영상이나마 동호회 동영상에 올려드리겠습니다.

또 우리가 서있는 곳은 해발 2470m이고 천지는 해발 2200m이니

서있는 이곳에서 270m아래에 천지가 있는 것이죠,

 

 

(사진18) 오녀산성

 

이제 백두산을 떠나 환인현(桓仁縣)에 위치한 구름과 맞다아 있는 졸본성(오녀산성)을 안내합니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주몽에서 알수 있듯이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도읍지로서

BC 37년 북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이 정착한 근거지로

현재까지 성벽과 성돌의 형태가 보존되어 있는 고구려 최초의 도읍지이다.

졸본성의 앞쪽은 깍아지른 절벽이고 뒷편은 강으로 되어있어 안전한 지형 조건을 이룬다고 합니다.

가깝게 하지를 못하고 원경조망을 하여 못내 아쉽다.

 

 

 (사진19) 대련 성해관장

 

마지막 관광지인 대련의 성해광장은 성해공원 동쪽에 위치해 있고 총면적은 45만㎟로서

대련에서 제일 큰 광장일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제일 큰 광장입니다.

이 광장의 내원 직경이 1999m인데 그 의미는 1999년 대련건설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광장은 푸른 잔디와 꽃, 바다 등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나타내고 있어

손님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광장을 들러보기 위해서는 말마차 또는 유람열차를 타고 다녀야만 할 정도로 넓고

이곳에서는 매년 중국내의 이름 있는 맥주회사 제품들의 품평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사진20) 대련 국제공항

 

4박5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대련 국제공항에서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련 국제공항은 여러모로 김포 또는 인천공항에 비하여 보잘것 없는 공항이었고,

공항내의 면세점도 정부주도가 아니라 개인이 일정 면적을 임대받아 운영하는 점포라 합니다.

따라서 가짜 물건이 많이 있으므로 구매를 자재하라는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만주지역도 우기철이라 날씨가 좋지 못하여

사진찍는데 어려움이 있었기에 선명한 사진을 올리지 못한 점 양해하시고

안개속에서 혹은 흔들리는 차안에서 추억에 담으려 노력하였으나

모든 여건이 여의치 못한점 안타까울 뿐입니다.

 

백두산 관광의 최적기는 우기철을 피한 8월말부터 9월초이며,

북쪽지방이라 가을이 이곳보다 일찍 찾아오기에 이때쯤 가을의 맛도 느낄수 있다고 하니

백두산 관광에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워커   황 상 연

 

 

출처 : 걸어서 하늘까지 걷기운동 동호회
글쓴이 : 도요새 원글보기
메모 : 백두산 관광